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 제국/역사 (문단 편집) === 술탄의 봉신이 되다 === 오스만 베이국의 세력은 나날히 강성해져 미하일 8세의 후계자 안드로니코스 2세 시절인 1326년경 [[오스만 1세]]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오르한 1세]]가 즉위하고 나서 곧바로 동로마 제국의 지방도시 [[부르사]][* 아시아 쪽 다르다넬스 해협 근처에 있다. 밑 지도의 'Prousa']를 점령하여 수도로 삼았다. || || ||[[파일:1545px-Beylicats_d%u2019Anatolie_vers_1330-en.svg.png|width=100%]]|| || 1330년 아나톨리아 판도. || || || ||[[파일:1557754622.jpg|width=100%]]|| || 1341년의 동로마 제국. || 1341년은 사실상 동로마 부흥의 마지막 기회였다. 아직 오스만 베이국은 [[아나톨리아]]에서 보스포루스와 갈리폴리를 넘어오지 못하고 있었고, [[아카이아 공국]]이 알아서 항복을 타진해 왔다. 그럼 [[아테네 공국]]도 자연스럽게 손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으니 제국은 그리스를 석권하면서 동방을 막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섭정자리에 취임하자마자 세르비아-불가리아-사루한의 3면전선을 막아낸 [[요안니스 6세 칸타쿠지노스]]가 [[아카이아 공국]]의 항복을 접수하러 수도를 떠난 동안 태후-총대주교-해군원수가 힘을 합쳐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이렇게 1347년까지 이어질 내전이 시작된다. || || ||[[파일:3454e5e4.jpg|width=100%]]|| || 1354년의 동로마 제국. || 설상가상으로 [[1354년]] 엄청난 지진이 [[갈리폴리]]를 강타했고, 이때를 틈 타 오스만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넘어 갈리폴리를 합병했다. 이것은 훗날 17세기까지 이어질 오스만 제국의 동유럽 정복의 첫걸음이었다. 요안니스 5세는 1354년 말 요안니스 6세를 폐위시키고 일단 복위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내전으로 제국의 국력은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세르비아]]는 이 내전을 틈타 동로마 제국이 가지고 있던 발칸 반도 서부의 영토를 차지했다. || || ||[[파일:1557754622 (1).jpg|width=100%]]|| || 1365년 아드리아노폴리스를 상실한 동로마 제국. || 이후 오르한 1세의 아들 [[무라트 1세]]가 즉위하자마자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도나우 강 유역을 잇는 중요 거점인 아드리아노폴리스(오늘날의 [[에디르네]])를 점령하여 1365년에 수도로 삼고 오스만 베이국에서 오스만 술탄국이 된 시점에 이르면 제국은 오스만의 속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가 된다. 그나마 남아있던 [[모레아]]는 요안니스 6세의 가문이던 칸타쿠지노스 가문이 장악해서 사실상 독립국인 상태였다. 이렇게 안드로니코스 3세가 사망한 후 [[요안니스 5세]]가 즉위했으나 무려 세 차례에 걸친 내전과 복위를 겪었으며 오스만 뿐만 아니라 세르비아, 불가리아 등이 강성해지면서 제국을 압박했다. 설상가상으로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중세 흑사병]]까지 일어남으로써 제국의 힘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요안니스 6세 칸타쿠지노스]] 시대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발병한 흑사병은 당시 수도 인구의 1/3을 죽게 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혔다. 1400년대에 이르면 [[오스만 제국/역사|오스만 술탄국]]은 [[티무르 제국]]의 [[앙카라 전투|공격을 받아]] 잠시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종래는 아나톨리아 지역을 장악하고 발칸반도의 슬라브 국가들과 동로마 제국도 거의 종속시켰다. 티무르 제국의 침공 직전 제국은 이미 그리스 영토도 펠로폰네소스 반도(모레아) 등지를 제외하고는 전부 오스만 술탄국에게 빼앗기고 콘스탄티노폴리스 근방 지역만 남아, 사실상 도시국가 수준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그나마 오스만이 티무르한테 쳐맞은 이후 오스만과 동로마 제국이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영토를 좀 돌려받긴 했는데 그래봤자 제국 영토는 테살로니키+모레아+콘스탄티노폴리스 주변의 흑해 연안 도시 몇 개(바르나, 메셈브리아 등등) 정도에 불과했다. 제국의 [[황제]]는 오스만 술탄국 술탄의 봉신이었으며, 제위 계승도 술탄의 마음대로였고 술탄의 군사 원정에도 따라가기도 했다. [[바예지트 1세]]의 사후 오스만에서 벌어진 왕위 계승권 분쟁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속국 신세는 면했지만 이미 제국은 멸망을 눈앞에 둔 상태였다. 이제 거의 모든 영토를 잃고 인적, 물적 자원이 완전히 고갈된 동로마 제국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유일하게 제국의 생명을 연장시킬 방법은 오스만의 계승분쟁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처절하게 몰락했음에도 노회한 외교력만은 남아있었던 동로마 제국은 오스만 왕자들의 계승 분쟁에 개입하면서 생명을 연장했다. 이는 그나마 가장 성공적인 방법이었는데, 예컨대 [[마누일 2세]]는 15세기 초에 시작된 오스만의 내전에 개입하여 오스만을 거의 붕괴시킬뻔하기도 했으며, [[무라트 2세]]의 [[제19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거듭된 콘스탄티노폴리스 포위]]를 외교적으로 물러가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편법을 가지고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했다. 일단 오스만 술탄국의 계승구도가 안정적으로 확보되면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황제들은 아무런 영향력도 끼칠 수가 없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한 것으로 유명한 [[메흐메트 2세]] 또한 살아남은 유일한 계승자였기에[* 엄밀히 말하면 갓난아기였던 이복동생이 있었으나 아기였던 관계로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 다음 순위의 계승자는 사촌인 오르한이었으나 그도 이미 망명해 있었다.] 동로마 제국이 계승 분쟁에 개입하려고 했음에도 실패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